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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환과 제자들이 쌓아올린 `나노거탑`…그 뒤엔 눈물의 참치초밥이 [사람과 현장]

손현덕 기자
입력 : 
2022-06-07 17:02:55
수정 : 
2022-06-08 08: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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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입자` 권위자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
◆ 매경 포커스 ◆
◆ 매경 포커스 / 손현덕 주필의 사람과 현장 ◆

현택환 교수(앞줄 가운데)가 서울대 공과대학 산화물 나노결정 연구단에서 같이 연구하는 석·박사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곳곳에 가스통이 세워져 있고 형형색색의 시약이 선반 위에 너저분하게 놓인 이 화학 실험실에서 세계를 뒤흔든 나노입자 논문이 탄생했다. [이승환 기자]
현택환 교수(앞줄 가운데)가 서울대 공과대학 산화물 나노결정 연구단에서 같이 연구하는 석·박사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곳곳에 가스통이 세워져 있고 형형색색의 시약이 선반 위에 너저분하게 놓인 이 화학 실험실에서 세계를 뒤흔든 나노입자 논문이 탄생했다. [이승환 기자]
지난 3월 24일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줌으로 연구 미팅을 진행하던 현택환 교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저 ○○○입니다." 누구나 들으면 아는 이름, 윤핵관 중 한 명이었다. 일단 양해를 구했다. 미팅이 끝나면 연락드리겠다고. 리턴콜을 했다. 급한 일이니 오늘 오후에 좀 만나자는 제안이었다. 장소는 시내 호텔. 무슨 일인지는 짐작이 갔다. 마음 단단히 먹고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한 대로 입각 제의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모시려고 한다. 인재를 구하겠다는 당선인의 의지가 너무 강하다. 과학에도 관심이 크다. 받아들였으면 한다."

현 교수는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미 준비했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안다. 저는 정치나 행정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대학에서도 그런 일은 가급적 피한다. 남의 논문 읽고 내 논문 쓰는 게 다다. 연구와 제자 키우는 일에 전념하고자 한다."

현 교수는 빙빙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직선이다. 옳다면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정치나 행정 하다가는 부러지기 십상이다. 그를 아는 사람 열이면 열, 장관 되는 걸 말리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연구팀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 한 장을 내민다. 5개의 주요 경쟁자가 있다. 지난 2016년부터 작년까지 현 교수팀의 논문 인용 건수는 1만1640회. 2등 연구소의 2배나 된다. 이런 초격차를 낸 건 불과 10년이 안됐다. 무슨 말이냐 하면 1등에서 한 번 도태되면 다시 따라잡기 힘들다는 의미. 졸면 죽는다는 것이다. 현 교수는 "만약 장관 2년 하면서 연구에 손 놓으면 우리의 나노기술은 2류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건 국가적 대손실이다.

사실 현 교수는 자기 연구 분야, 즉 나노 이외의 것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를 잘 아는 서강대 이덕환 교수는 "현 교수는 기, 승, 전, 나노로 보면 된다. 나노 이슈가 없는 데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며 "간혹 기초과학 연구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등,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뭐가 잘못됐다는 등의 발언을 할 때도 있지만 그 종착역엔 언제나 나노가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나노로 이뤄졌다는 인물.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하는 장관 자리에 스페셜리스트 현택환은 어울리지 않는다.

과학자로서 현택환을 소개하는 건 진부하다. 일반인들에게는 그냥 우리나라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첫 번째가 될 사람이란 설명으로 충분하다. 재작년 가을 그는 유력한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됐다. 기자들은 서울대에 있는 현 교수 연구실로 몰려갔고, 어떤 부지런한 기자는 그가 태어난 시골집까지 찾아갔다. 전문가 사이에선 미국화학회지(JACS)에서 11년간 부편집장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연구자들이 이 학회지에 논문 한 편 싣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당사자들 아니면 잘 모른다.

여기도 신문 동네와 비슷하게 '편집자의 몰고(Editor's Cut)'라는 게 있다. 기자들이 부실한 기사 써오면 데스크가 아예 기사를 쓰레기통에 처박듯이 연구자 논문이 부실하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편집자가 팽개친다. 그걸 하는 자리에 현 교수가 있었다. 몰고 비율은 신문사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10편 제출되면 5, 6편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명함에 이 한 줄만 달면 끝. 더 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다.

그가 연구하는 나노입자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것도 진부하다.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면 너무나 많이 나왔다. 나노입자를 균일한 크기로 만드는 건 화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그건 순도(Purity)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 방법을 개발했는데 그게 전문용어로 승온법이다. 2001년의 일이다. 그리고 3년 후 이걸 대량 생산하는 방법도 처음으로 개발했다. 당시 언론이 뽑은 제목처럼 기존의 방법보다 1000배 싸게, 1000배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 두 논문으로 그는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됐다. 과학자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받았다. 청암상, 호암상,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등등.

이런 상을 받을 때마다 그는 그 영광을 제자들에게 돌린다. 그 앞에 둘이 있는데 하나님과 가족. 다분히 의례적이다. 제자 부분은 과학자 현택환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지난 3월 22일 오후 5시 조선호텔에서 한국공학한림원 대상을 받는 자리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이 상의 주인공들은 제가 사랑하는 제자들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50여 명 정도의 제자를 배출했는데 정말 이 친구들, 이 제자들의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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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교수와 그 제자들을 만나보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현 교수와 제자들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연구실에선 전설이 된 '눈물의 참치초밥'이다. 현 교수의 첫 번째 제자였던 이진우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의 회고다. 이 교수가 현 교수 그룹을 떠나 미국으로 박사후연구원을 떠날 2005년께 일이다. 그가 이끈 연구팀 부사수가 김재윤 현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였는데 현 교수는 그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학교 앞 식당에서 10개들이 참치초밥을 배달시켰다. 현 교수팀의 단골 메뉴였다.

현 교수는 초밥 하나를 먹고 김재윤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 그동안 주로 시키는 일만 했지." 김 교수에겐 의문의 일격이었다. 현 교수는 초밥 하나를 더 먹고 말을 이어간다. "이진우 박사가 시키는 일 위주로 한 거 알아?" 또다시 초밥 하나 먹고, "자네 내가 던져준 아이디어로 혼자서 헤쳐 나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거 알아 몰라?" 김 교수는 답변을 못했다.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현 교수는 초밥 하나 다시 먹고 "이제 이 박사 나가면 독립적으로 일해야 해."

이런 일이 있고 나서 현 교수 연구팀에선 '눈물의 참치초밥'이 화제가 됐다. 후배들을 받으면 마치 군대 고참이 신병에게 하듯이 "너희들 눈물 젖은 참치초밥 먹어본 적 있냐"며 무용담을 펼친다. 이 교수는 "단순히 좋은 논문을 내는 것보다는 제자들을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말한다. 이 눈물의 참치초밥 사건 이후 정말 김재윤 교수는 괄목상대한 발전을 한다. 이 교수는 몇 개월 후 김 교수의 성취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김 교수는 그 이후 "이 바닥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독립적 연구자가 돼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됐다"며 "그때 난 껍질에서 깨어났다"고 술회한다.

8번째 제자인 경희대 유태경 교수도 참치초밥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박사 초년병 때였습니다. 제법 의미 있는 연구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반쯤 교수님 사무실에서 작업을 시작하는데 점심 때 참치초밥 도시락을 4개를 주문하시는 겁니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알게 됐죠. 점심과 저녁, 그리고 밤 11시까지 저와 사무실에서 화장실 가는 것 빼고 계속 이야기하면서 논문작업에 매달리셨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비교 검증해 가면서 정말 지독하게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둘은 늦은 밤 사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그때 현 교수가 한마디 한다. "자네가 이것을 즐길 수 있으면 교수가 될 수 있어. 못할 거 같으면 지금 포기하는 게 좋아"라고. 이 말을 뼈에 새겼다는 유태경 교수다.

제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연구에 열정이 없다면 그렇게 일할 수 있을까? 또 제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렇게까지 할까?"라고.

현재 현 교수와 같이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에서 근무하는 소민 박사는 "모든 제자들이 현 교수를 교수님이 아닌 선생님으로 부른다"며 현 교수가 제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 한 토막을 소개한다. "교수는 대학에서의 내 직책이고, 나와 너희는 사제 관계다. 내가 너희를 품은 이상 너희들은 모두 내 제자들이다. 내가 낳은 자식들 다음으로 너희들을 아낀다. 너희가 여길 나가서 사회 어디서든 자립할 수 있는 과학자로 양성하는 게 나의 역할이다"라고.

소민 박사는 "대학원생은 교수의 실적을 위한 노예라는 현 세태에 대한민국에 참스승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며 "현택환 교수는 단연코 그중 한 명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현 교수가 제자를 받는 기준은 단 두 가지다. 첫째, 세계 톱저널에 2개 이상의 논문을 제1저자로 내야 한다. 그럴 자신 없으면 내 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두 번째는 '좋은 인간관계'. 이거 할 자신 없으면 그 역시 제자는 안된다.

현 교수 사무실에서 3개층 더 내려가면 '산화물 나노결정 연구단'의 실험실이 있다.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화학연구실. 선반에는 이름도 모를 각종 시약들이 형형색색 가득하고 벽면 모서리는 액체질소통, 아르곤(Ar) 가스통들이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나노입자 관련 논문이 탄생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곳을 취재 갔을 때는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 7명이 연구에 매달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이 얼마나 끈끈한 관계인지. 표정에 그렇게 쓰여 있다. 한 명만 빼고 다들 코로나19에 걸렸었다고 하니 얼마나 부대끼며 지내는지 짐작이 간다.

현 교수가 좋은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10년간 모든 연구논문은 다 공동으로 한 겁니다. 혼자 할 수 있다고요? 그런 천재가 지구상에 몇 명 있겠습니까? 당연히 인간관계가 좋아야 좋은 성과를 냅니다."

공동연구에 관한 한 현 교수의 3원칙이 있다. 첫 번째는 고수를 찾아야 한다는 점. 그래야 배우는 게 있고 깨달음이 생긴다. 고수를 찾으려면 스스로가 고수가 돼야 한다. 그래서 톱저널에 논문을 올려야 하는 것이고 그걸 위해 현 교수는 제자들과 눈물의 참치초밥 같은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상호 존중. 파트너를 진심으로 존경해야 한다.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요령이 하나 있다. 비슷한 분야의 연구자를 파트너로 삼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 상대방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고 묘한 경쟁의식이 싹튼다. 현 교수가 주로 파트너로 삼는 연구자는 그래서 의과대학 교수들이다. 현 교수는 류머티즘이다 암이다 이런 거 모른다. 나노만 안다. 당연 그 분야 연구자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세 번째 원칙. 이게 어렵다. 누구를 제1저자로 하느냐, 만약 특허가 나오면 그 지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다. 그는 "원수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라며 "하나는 일이 잘됐을 때, 또 다른 하나는 일이 잘 안됐을 때"라고 한다. 현 교수가 지난 15년 동안 한 공동연구 중 이래서 깨진 건 단 한 번, 그래서 말썽 생길 것 같으면 초창기에 분명하게 계약서를 쓴다. 마지막 방법이다.

현 교수는 스스로 천재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연구에 들어가면 마치 공중부양하는 것처럼 들뜬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제자들은 현 교수의 이런 특징을 잘 안다.

울산과학기술원 안광진 교수는 현 교수와 같이 연구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자신의 업적에 대해선 자부심이 대단하죠. 그러나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선 한없이 겸손합니다.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다가 머릿속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어린아이처럼 기뻐합니다. 제자들에게 바로 전화를 겁니다. 요즈음 카톡을 하지요. 늦은 밤이든 아침이든, 차로 이동하든 해외 학회 참석 중이든 본인의 생각과 열정을 공유합니다."

현 교수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놓는 노트. 표지에 '미래를 위하여'라고 썼다.
현 교수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놓는 노트. 표지에 '미래를 위하여'라고 썼다.
현 교수는 노트 한 권을 보여준다. 1996년 10월 23일부터 써내려간 노트다. 노트 표지에 '미래를 위하여(For the future)'라고 쓰여 있다. 지금은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해 단체 카톡방에 뿌린다. 현 교수는 제자들에게 뭐가 중요한가라고 묻는다. "자신이 공을 세우는 거냐, 좋은 연구결과를 내는 거냐"라고.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모두 개방한다. 안 교수는 "그는 스스로 양보할 자세를 갖고 있다"며 "성취와 결과물의 공을 대부분 공동연구자나 제자들에게 돌린다"고 말한다.

과학자 현택환의 꿈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노벨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 제자들을 취재하고 나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현택환보다 더 뛰어난 과학자 만들기'일 거라는. 질문을 애써 참았다. 현 교수가 뭐라고 답할 줄 짐작이 갔기에. 그리고 그렇게 답하기가 민망하고 쑥스러울 것 같아서.

■ <용어 설명> ▷ 나노 :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로 고대 그리스에서 난쟁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란 말에서 유래됐다. 초미세의 세계로 금 원자 3~4개 정도의 크기다. 그런데 이 나노입자를 균일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입자의 크기가 물질의 성질을 결정하기 때문. 똑같은 성질을 얻으려면 나노입자를 같은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 현택환 교수는 이 분야 세계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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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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