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6] [기고] 故 최종현 회장이 꿈꾼 지식의 선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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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8-31 00:00본문
아무리 바빠도 거절하지 않는 강연이 있다.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후학들에게 하는 강연이다. 이달 초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고 학생 100여 명에게 강연하면서 한 가지만 꼭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좋은 인간관계'다. 21세기 과학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좋은 인간관계가 바탕이 돼야 지식이 선순환할 수 있고, 더 큰 성과도 낼 수 있다.
필자 역시 인생 고비고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서울대에 입학해 받은 장학금으로 등록금은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생활비가 부족했다. 이때 도움을 준 곳이 한국고등교육재단이다. 특별장학생으로 선발돼 학업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오늘 기일을 맞은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1974년 사재를 털어 만들었다. 지금까지 배출한 박사급 인재만 720명이 넘는다. 필자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최근에 설립된 최종현학술원이 진행하는 드림렉처와 심포지엄 등 여러 지식나눔 행사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가 받은 도움을 갚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음수사원(飮水思源), 즉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옛말처럼 내가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좋은 인간관계의 시작점이 아닌가 한다. 필자의 지식을 후학들과 나눈다는 점에서는 지식 선순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최 회장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21세기에 풀어야 할 과학적 이슈들은 1명의 천재가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복잡 다양하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협업할 때 위대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이제 공동 연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요즘 가장 큰 관심사인 화이자와 모더나의 mRNA 백신도 긴밀한 공동 연구가 아니었으면 단시간 내 개발은 불가능했다. mRNA 전문가인 생물학자와 지질나노입자 합성 전문가인 나노 과학자가 힘을 합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필자가 지난 23여 년간 서울대에서 발표한 대부분의 논문들은 국내외 연구진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이뤄졌다. 작년 1월 네이처 표지에 실린 논문은 이번 가을학기부터 시카고대 총장이 된 폴 알리비사토스 교수와 7년간 공동 연구로 얻은 결과다. 이 논문의 저자가 18명이나 되고, 그중에는 서울대 교수 3명, 캘리포니아대 교수 2명, 스탠퍼드대 교수 1명 등이 포함돼 있다.
성공적인 공동 연구를 위해서는 첫째, 다른 분야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분야가 달라야 시너지가 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동 연구 파트너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내가 먼저 양보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오랫동안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다.
지난 3월 서울대 입학식 축사 때 신입생들에게 똑같이 "좋은 사람관계를 가져라. 항상 겸손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본인 노력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더욱 겸손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우리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고 사용해야 한다. 최 회장이 47년 전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면서 꿈꿨던 인재 양성과 지식 선순환의 정신을 제자뿐 아니라 후학들에게도 꼭 당부하고 싶다.
[현택환 서울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