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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분의 1m의 세계…기술의 한계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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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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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ongAng 2021.11.15.

 

10억분의 1m의 세계기술의 한계를 넘어선다

 

 

나노기술의 미래

 

상상해 보십시오국회도서관의 모든 정보를 각설탕 크기의 저장장치에 다 넣을 수 있고암세포가 몇 개가 겨우 생겼을 때 발견해 내고강철보다 10배 더 단단하지만 훨씬 가벼운 소재이런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20년이 훨씬 넘게 걸릴지도 모릅니다그래서 우리 정부가 나노기술에 지원하고자 합니다.”

 

2000년 1월 20일 세계 정상급 공과대학인 칼텍을 찾은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남긴 역사적인 연설 중 일부분이다미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강국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 재임중 한 두 가지 중요한 미래 과학기술 분야에 국가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전폭적 지원을 한다위의 칼텍 연설이 바로 국가나노계획을 선포하는 순간이었다이후 지난 20년 동안 한국을 포함세계적으로 많은 나라가 나노과학기술에 많은 연구비를 투입해서 지원하게 되면서클린턴이 제시한 꿈만 같던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노기술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도우미기술이다반도체·디스플레이와 같은 정보전자기술배터리·연료전지·태양전지와 같은 에너지기술질병을 진단·치료하는 생명의료기술 등 다양한 기술들이 끊임없이 발전하는데그 기술적인 한계상황에 다다랐을 때마치 도우미와 같이 그 한계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술적인 단계로 발전하게 돕는 기술이다나노기술은 나노미터즉 10억 분의 1미터 수준에서 새로운 소재를 만들거나 소자를 구현하는 모든 기술을 통칭한다.

 

2020년 한 해 동안 거의 모든 지구인들의 일상생활을 멈추게 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에 대응하는 백신의 접종률이 우리나라에서 70%를 넘어섰다이미 잘 알려진 대로 모더나의 백신과 바이오엔텍이 화이자와 협력해 개발한 백신은 최초로 메신저 RNA(mRNA)를 활용한 것으로지질 나노 입자가 mRNA를 세포까지 안전하게 운반해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mRNA 분자는 일상 환경에 노출되면 수 분 안에 파괴되기 때문에 포장과 운반이 까다로운 민감한 물질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지질 나노 입자는 mRNA 세포 내 운반체로서의 효능이 높고 인체 내 부작용이 없는 특성을 가진 덕에 40여 종의 운반체 후보 물질들 중 선택되었으며, mRNA 기반 백신의 개발을 앞당겼다. mRNA 백신을 개발한 연구자들은 mRNA 운반체로 선택된 나노 입자의 성질이 mRNA 백신의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난치병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되는 나노기술은 앞으로 더욱 정교해지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다나노입자가 세포막을 통과해 세포 안으로 들어간 것을 최초로 확인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노기술은 의학 분야에도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mRNA 백신의 예로 알 수 있듯이나노 입자는 크기가 충분히 작기 때문에 사람의 몸속을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다약물을 감싸서 운반하기에 적당히 큰 크기이기 때문에 환경에 맞게 조절을 한다면 약물을 전달하기에 최적화된 운반체다감싸고 있던 치료제가 질병 부위에 도달했을 때 풀려나오도록 설계하면 치료제 독성으로 정상 세포가 피해를 받는 것을 최소화하고질병 부위에 약효가 집중돼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나노입자는 항암제와 같은 분자 수준의 작은 약물뿐만 아니라단백질과 같은 거대 분자까지 운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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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나노종합기술원에서 12인치 반도체 테스트 베드를 활용해 제작한 40나노 패턴 웨이퍼를 선보이고 있다나노종합기술원은 나노기술의 연구·개발에 필요한 고가의 시설과 장비를 구축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정부 출연연구 기관이다프리랜서 김성태

 

 

나노기술은 일상 생활과 동떨어진 개념처럼 느껴지지만 생활의 곳곳에 나노기술이 관여하고 있다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나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 스마트폰을 뜯어보면 소자라고 부르는 이미지센서·D램 등 반도체 칩들이 나온다소자는 다양한 소재로부터 제작되므로 좋은 휴대폰을 위해서는 좋은 소자가 필요하고좋은 소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소재가 필요하다나노기술은 원자 크기의 나노미터 단위에서 정밀한 조작을 가능케 하여 소재의 성질을 원하는 대로 조절하게 한다또한 나노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하다스마트폰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자가 점점 작아져야 한다한정된 집적 공간 내에서 소자들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열에도 강하고 휘어져도 디스플레이의 성능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나노 입자만의 독특한 소재적 특성은 나노 입자의 크기가 물리적인 성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반도체를 수 나노미터 크기의 나노입자로 만든 양자점을 예로 들어 보자양자점에 자외선을 쪼이면 가시광선이 방출되고입자 크기에 따라 가시광선의 빛깔이 달라진다여기서 우리를 더 즐겁게 할 나노기술이 등장하게 된다우리가 텔레비전을 구입할 때 가장 신경 쓰는 점은 무엇일까영상을 실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정확하고 선명하게 화면에 구현하는 것이다양자점을 이용한 QLED 텔레비전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입자들의 크기를 틀에 찍어낸 듯 균일하게 하는 나노기술이 필요하다크기가 7나노미터로 매우 균일한 양자점을 만들면 선명한 빨간색을 내게 할 수 있다반면양자점들의 평균 크기가 7나노미터라 하더라도 크기가 조금씩 다른 입자들이 많이 섞여 있다면 흐릿한 빨간색이 얻어질 수밖에 없다즉 균일한 나노 입자를 만드는 기술이 나노기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나노 과학의 초창기에는 합성된 나노 입자의 크기가 고르지 못해 원하는 크기의 나노 입자를 체로 거르듯이 골라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나노 입자의 양은 매우 적고 손실이 많아 번거롭고 비싼 공정일 수밖에 없었다화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균일한 나노 입자를 손쉽게 합성하는 기술을 본 서울대 연구실이 개발할 수 있었고 나노 입자의 상용화에 큰 주춧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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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기술은 오래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4세기 경에 제조됐다는 리쿠르고스 컵에는 유리에 금·은 나노입자가 들어 있어 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사진 대영박물관]


 

실제로 최근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폴더블폰이나 곧 시장에 등장하리라고 예상되는 롤러블폰을 보면접히고 말려도 디스플레이 및 이를 작동시키는 반도체 소자 배열 기판의 성능이 그대로 유지된다이렇게 자유로운 폼팩터를 지닌 반도체 소자와 디스플레이 기술에 힘입어 옷처럼 입거나 피부에 판박이처럼 붙일 수 있는 웨어러블 전자기기가 개발되고 있다또한 피부밑에 삽입하여 사이보그처럼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신체 삽입형 전자기기 기술도 연구실 및 스타트업 회사들에서 개발되고 있다미래에는 이보다 더 나아가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마법 신문과 같은 투명한 폴더블·롤러블 디스플레이와 가상현실과 3차원 홀로그램으로 다양한 정보가 표현되는 전자신문이나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및 확장현실 기술들이 우리 생활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이와 더불어 뇌 표면에 얇은 종이처럼 나노 스케일의 전극 배열을 붙여서 뇌 신호를 읽고 사람들을 무선 통신망을 통해 서로 연결하고 로봇이나 가상현실과 연결하는 기술도 생각할 수 있다이는 증강·가상·확장 현실에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을 참여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 기술이다.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차세대 에너지 및 환경 기술들 역시 나노기술의 도움으로 완전한 실용화의 목표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선 기존의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롭고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 생성 및 변환 시스템으로 바꾸어 가야 하는데연료전지·배터리·태양광을 활용한 에너지 생성·저장 기술 등이 필수적이다차세대 에너지 기술들의 대부분이 화석연료 기반의 기술에 필적할 높은 효율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려면 여전히 많은 장벽을 넘어서야 하는데나노기술은 핵심적인 도우미 기술로서 그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배터리의 경우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다공성 구조나 속이 텅 비어 있는 나노 구조를 전극에 도입하면여러 번의 충·방전 때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를 상당 수준 해결할 수 있다최근 각광받고 있는 수소경제의 중심이 될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데도 나노기술이 그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할 때 효율을 높여줄 수 있는 게 나노촉매다미국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원에서는 비싼 백금 촉매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철-질소화합물 기반 나노촉매를 개발연료전지의 가격과 효율을 개선하고 있다이처럼 나노촉매는 우리가 먼 미래라고 생각해 왔던 청정에너지 사회를 앞당길 수 있는 열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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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택환 IBS 나노입자연구단장 겸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1964년생나노입자 합성의 세계적인 대가다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 어바나 샴페인에서 무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장 겸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로 일한다화학분야 세계 최고 저널인 미국화학회지 부편집장을 11년간 맡았다듀퐁 과학기술상(2005), 포스코 청암상(2008), 호암상(2012) 등을 수상했다.